이 콘텐츠는 뉴스쿨 News'Cool이 2025년 12월 12일에 발행한 제177호 이번 주 뉴스쿨입니다.‌

이번 주 뉴스쿨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1. HEADLINE -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이순신을 만나요
  2. 뉴스쿨TV - 임진왜란 초반 조선이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
  3. PLAY - 내가 만약 전시 해설사라면?
  4. BOOKCLUB - 책으로 만나본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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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이순신 위인전을 읽어봤을 거야. 거북선을 이끌고 일본군을 바다에서 격파한 이순신. 우리는 이순신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어. 여기까지만 해도 이순신은 충분히 멋진데, 사실 이게 전부가 아니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은 이순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해. 그래서 최근 이순신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는 전시회가 열렸다고 해. 어떤 전시회인지, 빨리 가보고 싶지? 지금 쿨리와 함께 출발해보자!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우리의 이순신을 만나요

'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기록한 일기입니다. 이순신은 매일 전투 상황이 어떠했는지, 병사들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지, 군량이 충분했는지 확인해 난중일기에 꼼꼼히 적어 두었습니다. 난중일기를 읽으면 이순신이 혼란스러운 전쟁 속에서 어떤 근거로 전략을 세웠고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오늘날까지 국가문화유산으로 소중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전쟁 기록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그는 1597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슬퍼했다”며 부하들 앞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깊은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그동안 위인전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조선시대 최고의 명장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지금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충무공 탄신 480주년을 맞아 개막한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는 국보 6건, 보물 39건 등 총 258건의 이순신 관련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전시로, 이순신을 주제로 한 전시 중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영웅이기 전에 성실한 인간의 표상

1545년 한성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1576년 무과에 합격하며 군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관직에서 강직한 성품을 잃지 않았습니다. 윗사람이 거문고를 만들겠다며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명령했지만, “나라의 재산을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된다”며 이를 거절할 정도로 올곧았습니다. 이처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바로잡으려 했던 그는 종종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지만, 뛰어난 무예와 앞을 내다보는 판단력 덕분에 1591년 전라좌수사에 임명됩니다.

이순신은 부임하자마자 전쟁 대비에 나섰습니다. 무기와 군량을 확보하고, 새로운 전투선인 거북선 개발을 서둘렀습니다. 그 덕분에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조선군은 즉시 바다로 나아가 전세를 뒤집고 연이어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597년, 선조는 이순신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파직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없는 사이 조선 수군은 잇따라 패배했고 바다는 다시 위기에 빠졌습니다. 결국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이때 조선 수군이 가진 배는 단 13척뿐이었지만, 이순신은 ‘울돌목’이라 불리는 험한 해협에서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일본 함대 130척 이상을 격파하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가 바로 1597년의 명량해전입니다.

최초 공개 장검부터 난중일기까지

전시에서는 임진왜란 이전 이순신이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그리고 조선 수군이 어떤 전술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지 다양한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친필본 '난중일기'와 해안 방어 체계를 정밀하게 그린 ‘조선방역지도’는 이순신이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세웠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천자총통·지자총통 등 보물로 지정된 화포들은 조선 수군이 어떤 무기로 왜군에 맞섰는지, 그 뛰어난 기술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길이 2m의 장검은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했던 이순신의 결의와 장군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실감하게 합니다.

수많은 승리를 이끈 이순신은 결국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군의 사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아군과 명군이 모두 통곡하였으니, 마치 자기 부모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만 같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감동적인 기록 역시 이번 전시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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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더하기++
1. 오늘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이순신 장군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3.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순신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을 통해 이순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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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함께 부랴부랴 다녀왔어. 평소 쿨리가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바로 이순신이거든. 쿨리처럼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지 전시회장은 무척이나 붐볐어. 그런데 전시를 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조선이 대패하고 우리 땅을 일본에 빼앗겼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야. 어째서 당시 조선은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