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리가 간다] 의궤가 살려낸 정조대왕 능행차
의궤
정조의 '그림 설명서' 덕분에 다시 살아난 행렬
1795년 윤2월,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8일 동안 지금의 수원과 화성으로 행차했습니다. 그해는 어머니가 회갑, 즉 예순 번째 생일을 맞는 해였습니다. 정조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화성행궁에서 어머니의 회갑 잔치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행차가 끝나자 정조는 이 모든 과정을 책으로 남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원행을묘정리의궤』입니다. 이 책에는 행차의 날짜와 순서, 함께한 사람들, 쓰인 물건은 물론 잔칫상에 올린 음식과 장식한 꽃송이 개수까지 적혀 있습니다. 특히 '반차도'라는 그림에는 행렬에서 누가 어디에 서고 어떤 깃발을 들었는지까지 순서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능행차 재현 행렬은 바로 이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옷차림과 깃발, 행렬의 순서까지 책 속 그림을 보며 맞춘 것입니다. 230여 년 전 임금이 남긴 기록이 오늘 행렬의 설계도가 된 셈입니다.
무너진 성을 되살린 기록의 힘
기록의 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조가 세운 수원 화성도 기록 덕분에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정조는 1794년부터 1796년까지 수원에 새로운 성을 쌓았는데요. 공사가 끝난 뒤에 제작한 『화성성역의궤』에는 성을 쌓은 방법과 쓰인 재료, 일한 사람들의 이름과 품삯,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린 기계인 거중기의 그림까지 자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곳곳이 크게 부서졌습니다. 성의 북쪽 정문인 장안문도 전쟁 중에 크게 파괴됐습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복원 공사에서 사람들은 『화성성역의궤』를 펼쳐 놓고 성을 옛 모습대로 다시 쌓았습니다.
이 기록은 1997년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를 때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부서졌다 다시 지은 성이 원래 모습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을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수원 화성이 완성된 지 2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는 11일까지 수원 화성 일대에서는 제63회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정조가 남긴 꼼꼼한 기록이 2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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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는 '의식의 본보기'라는 뜻이야. 조선 왕실은 결혼식, 장례식, 궁궐 공사처럼 나라의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그 과정을 책으로 정리해 두었어. 다음에 비슷한 행사를 할 때 참고하려고 만든, 일종의 '행사 안내서'인 셈이야.
의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이 많다는 거야. 사진기가 없던 시절이라, 나라에 속한 화가인 화원들이 행사 장면과 사용한 물건을 꼼꼼히 그려 넣었어. 글만 읽어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모습도 그림 덕분에 한눈에 알 수 있지.
보통 의궤는 손으로 써서 몇 권만 만들어 왕실과 관청에 보관했어. 그런데 『원행을묘정리의궤』는 달랐어. 의궤 가운데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찍어 여러 권을 만들고 널리 나눠 줬거든. 이런 조선왕조의 의궤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어.
[뉴스 Q&A]
Q. '능행차'라는 게 정확히 뭐야?
임금이 조상의 무덤인 '능'을 찾아가는 행차를 말해. 조선에서는 무덤을 주인에 따라 다르게 불렀어. 임금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세자처럼 특별히 높은 지위의 왕족 무덤은 '원', 그 밖의 왕족(대군·공주 등) 무덤은 '묘'라고 했지. 1795년에 사도세자는 임금이 아니었으니 그 묘소는 '현륭원'이라고 불렸어.
그래서 옛 기록에는 이 행차가 '원행', 즉 원에 다녀온 행차라고 적혀 있어.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원행'도 그런 뜻이야. 사도세자는 훗날 임금으로 높여지면서 묘소 이름도 '융릉'으로 바뀌었어. 그래서 오늘날에는 '능행차'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고 있지.
Q.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려면 한강을 건너야 하잖아. 다리도 없던 시절, 정조의 행렬은 한강을 어떻게 건넜을까?
배로 만든 다리, '배다리'를 놓고 건넜어. 서울 노량진 근처 한강에 서른 척이 넘는 배를 나란히 이어 붙이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길을 만든 거야. 수많은 사람과 말, 가마가 한꺼번에 지나가도 끄떡없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대.
이 장면도 그림으로 남아 있어. 행차 모습을 여덟 폭 병풍에 그린 그림 가운데 한 폭이 바로 배다리를 건너는 장면이거든. 덕분에 오늘날 사람들도 그날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
1. 오늘 기사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정조는 왜 행차가 끝난 뒤 그 과정을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게 했을까?
3. 우리 학교나 가족의 행사를 230년 뒤 사람들에게 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 두면 좋을까?
❓ QUIZ : 다음 중 [쿨리가 간다]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내용 확인]
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8일 동안 행차했어.
②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에는 행렬의 순서와 모습이 그림으로 나타나 있어.
③ 『화성성역의궤』는 수원 화성을 쌓기 전에 미리 만든 공사 계획서야.
④ 수원 화성은 전쟁으로 부서졌다가 기록을 바탕으로 옛 모습대로 복원됐어.
정답: ③ 기사에 따르면 『화성성역의궤』는 공사가 끝난 뒤에 만들어졌어. 성을 쌓은 방법과 재료, 일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실제로 공사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야. 그래서 성이 부서졌을 때 옛 모습대로 다시 쌓는 데 쓰일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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