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기억해요

이 콘텐츠는 뉴스쿨 News'Cool이 2026년 6월 5일에 발행한 제201호 이번 주 뉴스쿨입니다.‌


🤓
김의영 할아버지에게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가 있어. 할아버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6·25 전쟁터로 떠났고, 그대로 돌아오지 못했대. 그런데 어느 날, 70년도 더 지나서야 강원도 철원의 어느 고지에서 아버지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어. 70여년의 기다림이 마침내 끝난 거야. 현충일을 앞두고 쿨리가 70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김순식 하사와 그 아들 김의영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 줄게.

이름 없는 전사자였던 아버지

이름 있는 영웅으로 돌아왔다

193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난 김순식 하사는 1952년 군인이 됐습니다. 그는 6·25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3년 7월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이어진 전쟁입니다. 김 하사는 정전협정이 맺어지기 불과 8일 전인 1953년 7월 19일 전사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고, 부인은 외아들을 임신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김 하사는 오랜 시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해를 찾지 못해 ‘이름 없는 전사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전사자’는 전쟁터에서 숨졌지만 유해를 찾지 못했거나, 유해가 발견됐더라도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은 군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김 하사의 유해가 강원도 철원군 내성동 무명 817고지 일대에서 발견됐습니다. 이 지역은 전쟁 당시 세 차례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곳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벌였고, 이후 DNA 검사 등을 통해 김 하사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5월 김 하사의 유해가 가족에게 전달되면서 그는 2000년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274번째 국군 전사자가 됐습니다. 생전의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들 김의영 씨는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름 없는 전사자 찾아라' 26년째 이어진 유해발굴

김 하사처럼 6·25전쟁 때 전사했지만 아직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군인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전쟁 당시 수많은 장병이 산과 들, 이름 없는 고지에서 숨졌지만 치열한 전투 속에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이처럼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국군 전사자들을 찾기 위해 2000년부터 유해발굴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유해발굴은 전투 기록을 살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감식단은 과거 전투 기록과 지도, 참전용사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전사자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찾습니다. 이후 현장에서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유해와 유품을 수습합니다. 군화 조각, 단추, 총알, 물통 같은 작은 물건도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DNA 검사로 70여년의 기다림에 마침표

하지만 유해를 발굴해도 전사자의 신원을 바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7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군번줄이나 이름표가 사라진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DNA 검사입니다. 감식단은 발굴된 유해에서 DNA를 채취하고, 전사자의 가족이나 친척에게서 받은 DNA와 비교합니다. 가족은 DNA 정보가 거의 같기 때문에 두 정보가 일치하면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에 김순식 하사와 같은 이름 없는 전사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유가족의 DNA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유해발굴만큼 중요합니다. 정부는 올해 유가족의 DNA 시료를 1만 2000개 이상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25명 이상의 전사자 신원을 확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국 보건소에서 6·25 전쟁 전사자나 실종자가 있는 유가족의 DNA를 채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 전쟁 당시 남한을 도우러 온 외국군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에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16개 나라의 군인들이 유엔군으로 참전해 우리나라를 도왔는데요. 이들 중에도 전장에서 숨진 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전사자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호주와 공동으로 1951년 4월에 벌어진 가평전투 중 실종된 호주군 윌리엄 K. 머피 상병의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머피 상병의 흔적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이번 발굴 작업을 통해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는 총탄과 유품 72점을 확보했습니다.

이처럼 유해 발굴 작업은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70여 년간 이름 없이 땅 속에 묻힌 이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모두를 기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생각 더하기
1. 오늘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73년 만에 아버지의 유해를 받아든 김의영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3. 전쟁 후 70여년이나 세월이 흘렀는데도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게 중요한 이유는 뭘까?

📋 한눈에 보는 교과 연계 요약표

교과학년·학기단원명핵심 연계 내용연계 강도
사회5학년 2학기광복과 전쟁이 바꾼 삶6·25 전쟁 발발과 수많은 전사자 발생, 전쟁이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 이해 → 헤드라인의 유해발굴사업과 신원확인의 역사적 배경 직접 연결⭐⭐⭐
사회5학년 2학기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노력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저항과 희생 이해 → TV의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무후선열제단, 유관순 열사 위패 내용과 직접 연결⭐⭐⭐
사회6학년 1학기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6·25 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그 상처, 전쟁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소의 의미 탐색 → 현충원이 평화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맥락 이해⭐⭐
도덕5학년 1학기함께 사는 세상, 봉사하는 우리타인을 위한 봉사와 희생의 가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의미 탐구 → TV의 소방관·의사자 이야기와 '나라를 지킨다'는 개념 확장 연결⭐⭐